동지절에 관하여


 

귀의 삼보 하옵고 !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파되면서 불교는 중국화된 중국적 불교로,중국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전파되면서 우리의 민속신앙과 풍습.문화를 그대로 보전 보존하면서 불교는 우리의 생활화된 불교 문화로 발전 하게 되었습니다.
동지(冬至) 역시, 우리민족의 민속 신앙 내지는 풍습으로 불교가 이를 수용 의식 의례화 함으로써 우리의 불교문화로 계속 이으지고 있습니다,

동짓날은 "다음해가 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아세(亞歲)라고 합니다.하지로부터 짧아지던 낮시간이 동지에 이르러 이날로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지게 됩니다.이것을 고대 사람들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것이라 보아서 생명과 광명의 주인인 태양신에 대한 축제가 거행되고,또 천문학에 의하여 이 날을 신년의 원단(元旦)으로 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작은 설'이라 하고 이 날의 절식(節食)인 팥죽을 정초에 먹는 떡국과 마찬가지로 나이 더 먹는 표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고대에 동지를 신정(新正)으로 생각하던 유풍(遺風)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도 주(周)나라가 중동(仲冬)을 정월로 삼은 사실이 있고 '역경'에서 복괘(復卦)를 11월에 배치한 것은 동지와 부활과의 관념적인 연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역시 중국 조정에서는 동지에 천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고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았으며,군신들이 한 자리에 연회를 베푸는 것이 원단과 꼭 같았습니다,

우리 나라의 신라,고려 때의 중동 팔관회(仲冬八關會)도 역시 원시시대의 동지제와 관련이 있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날에는 요즘의 기상청 역활을 했던 관상감(觀象監)에서는 달력을 임금에게 올리고 임금은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인장을 찍어 황색으로 장식된 황장력과 희게 장식한 백장력을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각 관청의 아전들도 각기 친한 사람을 문안하는 것이 통례이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서울의 옛 풍속에는 단오날의부채는 관원들이 아전에게 나눠 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쳤으며 그 관원은 달력을 자기 출신 고향의 농토 관리인 또는 묘지기에게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여러분 께서 잘 아시는 예수님의 강탄(降誕)하신 날이 양력 12월 25일로 알고 계십니다만, 원래 태양의 신생(新生)을 축하하는 동지제(冬至祭)에 행해졌던 것이 3세기경부터 12월 25일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동지절, 우리는 세알이 들어있는 팥죽을 먹기도하고 또 재앙을 없애기 위하여 동서남북 중앙의 5방에 팥죽을 흩뿌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불교적인 발상의 예화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은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또한 부처님께대한 신심이 아주 돈독하여서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황룡사에 가서 예불 올리는 일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부처님을 믿고 있던 선덕여왕이 어느 날 저녁 때 예불을 드리러 황룡사로 가던 도중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어떤 사람이 여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선덕여왕은 그 사람을 불러 소란을 피우는 연유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뭣 때문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게요?"
그러자 그 사람은 여왕께 여쭈었습니다.
"마마,황공하오나 소인은 지귀(志鬼)라고 하는데 평소부터 마마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늘 여왕마마께서 예불을 모시러 가는 행차를 몰래 숨어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행차를 늘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요?"
여왕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지귀가 대답했습니다.
"예 그러 하옵니다. 하오나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여왕마마께 제 마음을 털어 놓으려고 행차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선덕여왕은 지귀의 그 말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지귀를 황룡사까지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선덕여왕과 지귀 일행이 황룡사에 도착하여 황룡사 문 앞의 9층탑 곁에 이르자 선덕여왕은 안으로 들어가며 지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부처님께 예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당신을 데리고 갈 것이니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리도록 하시오."하고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밖에 남게 된 지귀는 선덕여왕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여왕이 나오지 않자 기다리는 것이 애가 타서 그만 마음 속에서 심화(心火)가 일어나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죽은 지귀는 귀신이 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래서 신라 천지에는 지귀 귀신의 작폐가 심하여 많은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기에 이러한 지귀 귀신의 작폐를 방지하기 위해서 해마다 팥죽을 끓여 집집마다 대문에 뿌리고 길에도 뿌렸다고 합니다


동지란 일년 중에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양력으로는 12월
22일경에 해당 합니다
이 날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작은 설이라 하여 정초에 떡국을 먹듯이 동지날엔 팥죽을 먹어야만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반드시 팥죽을 쑤어서 새알심을 시식삼아 먹고 또 사당에 차례를 지내며 액땜을 한다 하여 팥죽을 대문이나 판자에 뿌리는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동지 때 팥죽을 쑤는 이유는 옛부터 귀신은 특히 붉은 팥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여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어 뿌리게 된 것이라 합니다
불교의식 중에는 병을 낫게 하는 구병 시식이 있는데 병귀(病鬼)를 쫒는 귀절에서는 요즘도 붉은 팥을 뿌리면서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동지는 묵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음(송구영신:送舊迎新)에 있어 잡귀와 재앙을 멀리 하고 복을 구하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의미를 갖고 있고,
부처님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지난해를 참회하면서 소원을 빌어 좋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하려는 민간의 따스하고 풍요로운 습속이었던 것입니다, 성불 하십시오!!!


지리산 피아곩 하악대 불 락 사
해동 사문 휴봉 석 상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