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사서 펼친 봉사
2004.08.10 16:00 입력여오숙 발행호수 : 680 호 / 발행일 : 2002-11-13


지난 10월 하순 우리 선재마을의료회 회원들은 지리산 피아골에 위치한 불락사로 무료진료를 다녀왔다. 회원 대부분이 의료계에 근무하는 만큼 모두 나름대로 바쁠 터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29명이나 참여했다. 그러나 단풍철 어렵게 구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쉴새없이 막히는 교통체증도 그러했지만 간혹 휴게소에서마저 일찍 불어닥친 한파로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다.

그렇게 불원천리 불락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쏟아질 듯한 별들이 밤하늘을 무성하게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절에서 상주하는 스님과 불자님들의 따뜻한 환대는 차안에서의 답답함과 추위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게 하는 따스한 봄볕이었다.

밤늦게 도착한 우리는 절 한 켠에 모닥불을 지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료진료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하게 된 의사선생님의 사연, 가톨릭 병원에서 불교호스피스 활동을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불교대학원에 진학한 한 젊은 여학생의 진지한 고민 등. 그렇게 산사의 밤은 조금씩 깊어만 갔다.

아침햇살에 물든 불락산은 가을 정취로 물씬했다. 뒤늦게 아침공양을 마친 우리 회원들은 무료진료에 들어갔다. 우리가 무료진료 한다는 것을 얼마나 알까, 과연 몇 분이나 올까 조바심도 냈지만 그것도 잠깐.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의료진을 찾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을 지나서는 인근 쌍계사 스님들 16분도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물 맑고 산 좋은 곳에 사셔서 그런지 다행히도 심한 질병을 앓는 분들은 없었다. 치과 진료를 받으러 온 한 할머니는 간단한 치료에 우리 회원들의 손을 꼭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렇게 무료진료를 모두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의 막바지였다. 우리는 주지 상훈 스님께 인사를 드린 후 서둘러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붉게 물든 단풍 위로 저녁노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피곤한 탓인지 지리산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회원들은 하나 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슴속에는 지리산의 맑은 별과 추억을 하나 씩 품고서….

여오숙<차병원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