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겠다


 

지리산기행4-대웅전이 없는 사찰 불락사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대호(mokposm) 기자

다 큰 어른이 겨우 찾은 이정표 앞에서 또 길을 잃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저 잠이나 늘어지게 자자고 찾아든 산 마을에서 해거름도 비추기 전에 저녁을 청해 먹고 배도 꺼지기 전에 자리 깔고 누웠다.

단단한 참나무만 골라 불을 지폈는데 밤새 여린 흙벽을 몰아친 된하늬(서북풍(西北風)’의 뱃사람 말- 편집자 주)에 아궁이가 비었는지 누렁소 귀밑 핑경(딸랑이)이 기척하기도 전에 눈을 떴다.

▲ 부처(중생)가 즐거운 절 불락사

계곡을 타고 1시간 가까이 걸었을까. 불락사(佛樂寺)라는 절이 눈에 들어온다. 저 절의 스님은 무슨 즐거운 일이 많아 절 이름을 저리 재미나게 지었을까?
가파른 언덕을 타고 절에 오르는데. '까악! 까악!' 밤새 또 누가 죽었는지 아침부터 배고픈 까마귀가 곡을 한다.

TV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조장(鳥葬/천장(天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독수리 떼를 보며 온몸을 부스스 떨었다.

어린 시절 시체를 땅에 묻지 않는 풍습 때문에 동네어귀에 만들어 놓은 초분이나 독다물(잔디를 심지 않고 돌로 쌓은 아이 무덤)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건 종류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두려움이 아닌 희열 같은 것이었다. 세상근심이 새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망자를 흙으로 보내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독수리에게 먹여 하늘로 보낸다. 마지막 남은 두개골과 뼈까지 가루로 만들고 보릿가루와 섞어 독수리에게 내어 주니 지상에서는 한 점 티끌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티베트에 가고 말겠다.'
마치 다짐처럼 벌써 서너 번은 중얼거렸다.


▲ 성직자들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엄숙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훈 스님

언덕을 한참을 오르고서야 절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 한잔 마시러 왔습니다.'

주지 스님인 상훈 스님은 맨발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성직자들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엄숙함은 고사하고 큰 덩치에 눈까지 부리부리해 절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어깨아저씨'로 보일 만치 강한(?) 인상이었다.

거기다 먼지 하나 없는 선방에서 빛 좋은 자기에 우전녹차 한 잔 마실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지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인스턴트 차에 사람이 수시로 드나드는 사무실 소파에
삐딱하게 등을 기대어 앉는다.

'스님, 이 절에는 대웅전이 없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대한민국 어느 절에 가도 있는 대웅전은 없고 목탁소리 고요해야 할 사찰에 난데없는 북이며 장고, 징, 꽹과리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 불락사엔 대웅전은 없고 법고전이 있다.

'법고전(法鼓殿)이 있잖아. 나중에 짓든지…못 지으면 말고.'
나는 이 황당한 발언에 당황했다. 혹시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바짝' 긴장까지 된다.

'법(세상의 이치)은 두드려야 알지, 알아듣지 못할 말 지껄인다고 중생이 구제되나?'

상훈 스님은 두드리고 불고 튕기는 우리 악기를 비롯해 춤사위와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같이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웅전 대신 '법을 두드리는 곳'이라는 의미의 법고전을 지었다고 한다.


▲ 초파일이면 법당은 무대가 돼서 음악회가 열린다.

내가 만난 마을 사람들은 '초파일에 절(불락사)로 굿보러 간다'고 이야기한다. 불락사에서는 법회를 여는 대신 법을 두드리는 산사음악회가 자주 열리는데 주민들에게는 이것이 굿이다.
음악회가 열리는 날에는 인근 마을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고요히 잠자던 피아골 골짜기가 소란스러워진다. 이 때는 법고전의 10개 문이 모두 열리고 부처님을 모신 거룩한 법당이 경망스럽게도 '풍악'을 울리는 무대가 된다.


▲ 법고전 내부가 넓은 이유는 유사시 무대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민중의 몸짓과 언어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최고의 포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속세의 민중들과 함께 소리도 하고 곡차도 마시면서 슬플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같이 웃어주는 야단법석 난장판 절을 만들겠다.'

상훈 스님은 '잡놈론'을 역설한다. '워메 이 잡놈'처럼 최고의 칭찬은 없다는 것이다. 민중들이 사당패나 마당놀이판에서 익살스러운 재담이나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응어리를 풀어줄 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터트리는 말이 '잡놈'이라는 것.

여기에서 '잡'은 '쓸모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데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노동을 천한 것으로 치부해 장인을 쟁이로 폄하했듯이 농민과 상민들이 술 한잔 마시고 애환을 푸는 것을 업신여긴 사대부는 '잡'을 '쓸모없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아마도 뭇사람들이 상훈 스님을 괴짜 스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사대부들이 만들어 놓은 엄숙주의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부분 종교가 현세의 고통을 감수하고 내세의 안녕을 비는 기복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불락사에는 현세의 기쁨까지 보너스로 안겨 준다. 산을 내려올 때서야 상훈 스님이 신성한 절간을 야단법석 난장판으로 만들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을 찾아 여행을 떠난 지 석달. 여전히 나는 길 위에 서서 길을 묻는다. 상훈 스님의 난장판에서 작은 실마리를 얻었다. 지난 시절 타인과의 동행이 때론 아픔이 되고 서로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봄날 새순이 나기도 전에 뼛속 깊숙한 곳에서 '희망'의 새살이 돋아날 수도 있다. 오랜만에 발걸음이 가볍다.




'랩? 우리말부터 제대로 배워라'
교과서 '국악' 표기부터 바꿔야

'민족음악을 새롭게 도약시키자는 이유도 있고 절이 더 이상 은거해 있을 것이 아니라 민중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불락사를 열었다.

유교적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민중들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상스러운 것으로 치부돼 금기시 되었지만 절에서는 장구 치고 꽹과리 쳐도 탈 날 것이 없었다. 일종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아무 때나 누구나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서 민중들이 장구 치고 징 치고 악도 쓰고 술 한잔 마시고 객기도 부릴 수 있은 절을 만들고 싶었다.'

- 왜 대웅전이 없는가?
''법을 두드려서 알린다'는 의미에서 법고전을 지었다. 이곳은 민족음악과 불교음악을 두드리는 법당이 될 것이다. 대웅전은 나중에 짓든지 말든지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1년에 몇 차례씩 음악회를 여는데 오는 17일∼18일까지 1박2일 동안 김영임, 김성녀, 윤문식, 이영희 같은 예술인들을 모셔다가 야단법석 난장판을 만들어 보겠다.'

- 야단법석 난장판이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민중들 위에 군림하고 외세에 기대온 사대부들 처지에서 바라보면 '야단법석'이 정리되지 않고 가볍고 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야단법석은 원래 '야외에 자리를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의미다. 야자는 들야(野)를 쓰는데 과거 불교는 대중적이어서 농민들과 같이 들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부처님 세상을 가르쳤다.

또한 사대부들에게 무질서하게 보였던 난장은 민중들의 소통의 공간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
단을 따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들 자체가 단이 되는 것이다. 슬픔과 기쁨을 같이 나누고 사람이 죽으면 상여도 같이 메고 민중과 같이 하는 것이 불교다. 인간을 벗어난 신앙은 우상이고 미신이다. 부처도 중생 가운데 있고 중생 없는 신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 민족음악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음악이 오선보(오음계)를 지켜온 중국음악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중국의 아악(雅樂)·당악(唐樂)과 달리 정읍·동동·월정화(月精花)·정과정(鄭瓜亭)과 같은 속악 (俗樂)으로 발전했고 강창이나 경극도 '토리'의 형태로 발전했다.

민족에서 발아해 반만 년을 거쳐 우리의 정서·근성·관계·관념·속성을 담아낸 것이 우리 음악이며 외국에서 들여온 것도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 요즘 우리 대중음악에 대해서 어떻습니까?
'우리말이 발전해서 민족음악이 된 것인데 병신××들이 우리말은 ×도 모르면서 서양 랩이나 팝송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다. 다양성도 필요하지만 우리말과 음악을 알고 남의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도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고 고상한 이름을 붙여서 처박아 두고 서양음악만 가르치는데 교과서에서 '국악'이라는 말은 없애고 서양음악을 '양악'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옳다.'

- 우리 기독교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징을 치고 예배를 시작하고 장고 가락에 찬송가를 부르면 참 멋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찬송가를 우리 가락으로 편곡해서 부르는 한국적 기독교음악도 매력 있을 것 같다. 미국식 기독교가 기독교의 근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 김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