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뜻하는 한자는 한·중·일이 모두 다르다. 유독 한국만이 벗 우(友)가 들어가지 않은 친구(親舊)를 쓰며, 중국은 펑여우(朋友), 일본은 도모다치(友達)라 한다. 벗 우(友)는 “좌(左)·우(右)에서 손을 뜻하는 부분(ナ)과 손(又, 우)이 합쳐진 회의(會意)”라 하며, “손과 손이 한 방향을 향하는 모습, 서로 손 잡고 돕는다”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의 친구는 꼭 그 뜻만 있지 않다.
지인(知人)이라는 말도 있다. 지인의 이야기를 하려면 백아(伯牙)와 종자기(鐘子期)를 떠날 수 없으며,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끌어안고 “장차 누구를 향하여 타며 장차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하겠는가?” 하고 칼을 뽑아 단번에 다섯 줄을 긁고 거문고를 부수고, 밟고, 패대기쳐서 아궁이에 불태워 버린 후, “속이 시원하냐?” “시원하고 말고.” “울고 싶으냐?” “울고 싶고말고”를 자문자답(自問自答)했을 것이다.
내 구태여 친구와 지인을 구분한다면, ‘밥은 먹었냐?’를 스스럼없이 묻고 답할 수 있으면 친구에 가깝다.
2021.12.11. 09;38, 순천 구례구역 서울에서 청주에서 연암당(燕巖黨) 3분이 KTX로 구례구를 향하고, 대구에서 피서산장(避暑山莊)팀 2분이 자가용으로 달려온다. 오호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구례구역은 안개가 자욱하다. 섬진강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물안개만이 다리의 존재를 알리고 여기가 섬진강이야 한다.
‘곡신불사(谷神不死)’, 골의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믈한 암컷이라 한다. 가믈한 암컷의 아랫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다. 연암당과 피서산장팀이 가야 할 곳은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그리고 국사암, 불일폭포다. 지리산 자락에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세상에나, 마을 이름이 꽃이 피는 큰 마을에(花開面) 구름과 나무가 있는 동네(雲樹里)라니, 이곳이 신선이 사는 동네가 아니면 어디에 신선이 살아갈까? 가믈한 골의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첫인상을 소중하게 간직하려면 기대치를 낮추면 된다. 기대를 낮추면 실망도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지리산과 섬진강에는 그런 것이 없다. 기대치가 아무리 높아도 실망이 주는 법이 없다.
차가 달린다. 섬진강을 따라 달린다. 강이 너른 들을 만나지 않아 V자 협곡을 지나는 구간이다. 강이란, 너른 곳은 너른 품이 있어 좋고, 좁은 곳은 좁은 협곡의 아름다움이 있다. 자욱한 물안개를 따라 꿈틀거리듯 이어지는 강섶에는 푸른 대나무숲이 울창하고 그곳에서 피서산장팀이 차를 멈춘다. 아스라이 이어지는 강섶에서 커피를 꺼내들고, 물안개 저 너머를 끝없이 바라본다.
이제 차는 미끄러지듯이 피아골을 지나 화계장터에 이르고, 다시 쌍계벚꽃 십 리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걸어도 좋고, 차로 지나가도 좋다. 길섶에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 사이로 차가 질주한다. 화개천이 나란히 달린다. 냇가가 달리는지 차가 달리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사람이 길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람이 길을 만든 적은 없다. 시내가 길을 만들고 바람이 길을 만들고 물이 길을 만들었다.
쌍계석문(雙磎石門) 아래 백운장(白雲莊)에서 첫 여정을 묻는다. 산 아래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줄 곳은 여기밖에 없다. 쌍계별장과 청운장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명맥을 유지하는 여관은 백운장이다. 이제 백운장도 전통찻집 단야로 변했다. 장소가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그 옛날 운수리 쌍계사를 찾던 수많은 사람이 하룻밤을 머물렀던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제 잠시 흘러가는 이야기만 존재한다. stock과 flow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가 되려면 푸른 대나무사이로 달이 솟아야 하고, 술이 오가며 흥이 돋아야 하고, 시냇물이 귀를 간지럽혀야 한다.
옛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오갔을 여관방이 이제 다실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대추쌍화차를 주문하니, 까칠한 주인마님이 호박죽과 무김치를 먼저 내온다. 이른 새벽에 출발한 우리를 위해 이미 예정된 세렌디피티다. 단야 찻집 뜰에는 녹차 꽃이지 지지 않고 여전히 피어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거리, 쉼 없이 살아온 날들, 잠시나마 내려놓고 쌍계석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향한다.
쌍계사는 작지만 암팡진 절이다. 옹기종기 가득 들어선 전각과 당우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법당은 평평한 땅에 지었고, 금당은 비탈면에 세웠다. 공간이 어우러지니 대나무를 당우 사이에 심어 답답함이 없다.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을 보고,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 있는 금당은 기왓장 어깨너머를 본 후 국사암으로 향한다.
마음 한구석 저 밑바닥에 웅크리고 똬리를 틀고 있는 그곳은 누구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다. 내게 있어 국사암(國師庵)은 그런 곳이다.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은 월정사나 내소사 같은 장엄한 맛은 없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산죽과 소나무가 어울려진 길이다. 아늑하고 또 아늑하다. 그런 곳이다. 1988년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찾아간 곳이다. 처음으로 녹차를 배웠고, 녹차를 마셨고, 녹차의 덖음을 알았으며 주위가 온통 야생 차나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구에게나 감히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어 숨겨 두고 싶은 비밀 안식처가 있다면, 바로 국사암까지 걷는 작은 오솔길이며 그 길의 끝에 맞닿는 국사암이다.
이제 쉬엄쉬엄 불일폭포로 오른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산죽, 떡갈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따라 오른다. 지리산이지만 지리산답지 않은 산책로다. 아직은 지리산의 매운맛을 보여주지 않은 편안함이 있다. 그 길을 따라 1시간 30분가량 오르면 불일 평전이 나오고 그 너머에 불일폭포가 있다. 백운봉 청운봉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는 까만 바위와 하얀 물 색깔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설악산의 폭포는 하얀 바위에 하얀 물이 떨어지지만, 지리산 폭포는 검은 바위 위에 하얀 비단이 내려앉는다.
연암당과 피서산장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대구에서 갖고 온 귤과 달달한 대추차를 마시면서, 왜 연암당이 피서산장에 이르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피서산장은 연암의 최종 목적지다. 열하일기, 서울 북촌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연암을 논하다가 고흐로 이어지고 다시 윤두서로 왔다가 건륭제로 이어진 이야기가 벌써 3년 전이었다. 이제 열하일기의 최종 목적지 피서산장팀이 합류하니 완전체가 되지 않았는가? 곡신불사라 가믈한 암컷의 아랫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로다.
*참고 및 인용: 신경진, ‘<漢字, 세상을 말하다> 親舊 친구’, 중앙일보, 201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