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사리불 스님과 함께 탁발을 나섰을 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갑자기 사내가 나타나더니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러더니 사리불 스님의 발우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당신의 그 표정과 몸짓이 아니꼬워 견딜 수 없단 말이야. 자, 이래도 아무렇지 않아?”

  그러더니 이번에는 주먹을 들어 내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얼마나 세게 얻어맞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끈적끈적한 것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아서 보니 피였습니다. 사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느 맑은 아침에 수행자 두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대체 사리불 스님과 내가 저 사내에게 전생에 무슨 못된 짓이라도 했단 말일까요? 사리불 스님은 워낙 수행이 깊은 분이시니 잘 넘긴다고 해도 나는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왕자였습니다. 거대한 제국은 아닐지라도 한 나라의 최고통치권을 물려받을 신분이었습니다. 내 말 한 마디에 온 나라가 군사를 일으킬 수도 있고, 나의 눈짓에 사람의 생사가 결정되기도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이라도 성으로 돌아가서 병사를 풀어서 사리불 스님과 내게 이런 못된 짓을 저지르는 녀석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싶습니다.

  나는 흘러내리는 피를 닦지도 않은 채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치를 떨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라훌라,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고 있구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조용하고 은은한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사리불 스님이셨습니다.

  “지금 많이 괴롭지? 모욕을 당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 사내를 좇아가서 맘껏 패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건네는 스님을 보자니 나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인욕이란다. 참는 일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자신을 분노에 불태워서는 안 된다. 어서 가서 얼굴을 씻고 오렴.”


 나는 강을 찾아내려갔습니다. 얼굴을 씻으려고 허리를 굽히자 시뻘건 모습이 강물에 비쳤습니다. 시뻘건 핏물 사이로 그 피보다 더 붉게 상기된 분노에 찬 내 얼굴이 보였습니다. 억울함을 참느라 이를 앙 물었고 눈물을 참느라 두 눈이 충혈 되었습니다.

  찬물을 떠서 얼굴에 뿌렸습니다.


  ‘아까 그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밟아버리겠다.’

  다시 찬물을 떠서 얼굴에 뿌렸습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내가 못나서 참는 줄 알아?’

  다시 한 번 찬물을 떠서 얼굴에 뿌렸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아 몇 번 더 찬물을 뿌렸습니다.

  ‘내가 저보다 못난 줄 알아? 어디 감히….’


  수도 없이 찬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나는 속으로 외쳐댔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외쳐 대다보니 참 묘하게도 그 사내의 폭력 자체보다는 ‘나’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내가 더 얽매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게….’

  ‘감히 나를….’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어느 사이 말끔하게 씻긴 얼굴이 강물에 비쳐졌습니다.

  내가 누굴까? ‘어떤 나’는 신자들의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하고, ‘어떤 나’는 봉변을 당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 ‘나’라는 것, 대체 무엇을 가지고 ‘나’ ‘나’ 하면서 사람들의 존경에 흡족해하고, 비난에 분노하는 것일까? 강물에 비친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사이 마음속에서 사내를 향한 분노는 사라졌습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강 언덕을 올라오는 내게 사리불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을 건네셨습니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여야 한다. 아까 그 사내는 고요하게 걸어오는 우리를    보고 뭔가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 게다. 빈정거리고 모욕을 줌으로써 그 사내도 자신의 ‘나’를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 게다. 세상에는 너나없이 그런 마음의 생명체가 어깨를 부비며 살아가고 있다.

  봉변을 당한 네 자신이 가엾고,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야 하는 네 자신이 안타깝듯이 아무   죄 없는 타인에게 해를 끼쳐야 속이 풀리는 사내에게도 가여운 마음을 품어주어라.
  그래서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더냐.
  ‘성냄을 죽이면 평온하고, 성냄을 죽이면 후회가 없다. 성냄은 독의 근본이어서 모든 선근을 없애 버린다. 성냄을 죽이면 성자들이 찬탄하고, 성냄을 죽이면 근심이 없다.’라고 말이다.”


   인욕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참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에게 쏟아진 모욕 그 자체에 분노하기 보다는 ‘내’가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일은 즐겁습니다.

  물론 세상의 폭력은 사라져야 합니다. 나는 까닭 없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분노를 품지 않고 애정과 연민으로 다가가서 폭력이 자신과 남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를 일러주기 위해서 수행을 계속 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 모래세례를 받은 발우를 들고 깨진 머리로 탁발을 하러 마을로 들어서기가 좀 창피하지만 이 또한 내 하루의 수행 몫이거니 생각하고 즐겁게 사람들의 대문으로 다가갑니다. 인욕은 그래서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