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을 읽다
석지현 스님

 

II. 벽암록의 구조

 

1. 벽암록의 7중 구조

 

    벽암록은 다음과 같이 7중 구조로 되어 있다.

    ① 수시 ② 본칙 ③ 본칙착어 ④ 본칙평창 ⑤ 송 ⑥ 송의 착어 ⑦ 송의 평창

 

    ① 수시垂示 : 일종의 머리말(序文)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본칙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래서 『장본張本』의 제2칙 수시가 『일야본一夜本』에서는 제1칙 수시로 들어가 있는가 하면, 또 몇몇 칙에는 아예 수시가 없는 경우도 있고 수시의 문장이 중복되는 예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수시는 본칙을 읽기 위한 일종의 마음가짐을 서술한 단상斷想이라고 할 수 있다. 『일야본』에서는 이 <수시>를 <시중(示衆, 청중에게 알림)>으로 쓰고 있다. 이 수시는 원오 자신이 직접 쓴 문장이라고 하는데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과장이 심하다.

 

    ② 본칙本則 : 옛 공안(古則, 또는 公案)으로서 『벽암록』핵심부분에 해당한다. 100개의 옛 공안이 『벽암록』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는데 앞의 수시와 뒤의 착어, 본칙의 평창, 송, 송의 착어, 송의 평창은 모두 이 본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착물들이다.

     따라서 이 100개의 옛 공안에는 『금강경』 문구를 비롯, 달마에서 대용지홍(大龍智洪, 1000~?)에 이르기까지 개성이 각기 다른 선승들의 갖가지 선문답이 총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그 유명한 조주의 ‘無’자 공안은 여기 없다. 이 ‘無’자 공안은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에 의해서 강조되다가 무문혜개無門慧開의 『無門關』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③ 본칙의 착어(本則著語) : 착어란 일종의 촌평寸評으로서 하어下語라고도 한다. 속담과 속어의 투성이며 문장의 응축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원오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가미되어 정신을 여간 차리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동시에 전광석화와도 같은 원오의 직관력과 예리함이 번뜩이고 있다. 언어의 충격력이 대단하므로 이 착어의 숙독만으로도 순간적인 깨달음이 가능하다. 이 착어에는 다음의 네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반어反語적이다. 둘째, 역설적이다. 셋째, 냉소적이다. 넷째, 욕설적이다.

 

   ④ 본칙本則의 평창評唱 : 평창이란 평론제창評論提唱의 준말이다. 평창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역할이 있다.

첫째, 본칙의 배경이 되는 고사故事와 인물 소개. 둘째, 본칙 자체에 관한 설명과 주석. 그러므로 이 평창을 토대로 본칙을 다시 읽으면 본칙 전체의 윤곽이 잡힌다. 그러나 문장 전체가 속어체俗語體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기존의 문장체 한문 해석만으로는 그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다. 속어체 해석의 한두 가지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 대가지大家知 : 누구나 (다)알고 있다. 여기서의 ‘大家’는 ‘일반대중’을 말한다. 이 경우 ‘大’는 ‘일반대중’을, ‘家’는 大자에 붙은 어조사다.
  • 수시須是~ 시득始得~ :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구는 선문禪文에서 가장 많이 쓰이므로 암기해 두어야 한다.
  • 끽다거喫茶去 : (입닥치고) 차나 마시게. 여기서의 ‘去’는 부정적인 기분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날마다 생일날. 여기서의 ‘好日’은 ‘좋은 날’이 아니라 ‘생일날’을 뜻한다.
  • 불방기특不妨奇特 : 정말 대단하다. ‘不妨’은 ‘정말, 몹시’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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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송頌 : 옛 공안 100개 하나하나마다 붙인 설두의 공안시(頌古)를 말한다. 설두의 이 공안시는 그 격조가 높고 기상이 험준하다. 그리고 선적禪的인 직관력과 시적인 영감이 풍부하다. 시상詩想의 방향전환이 무척 빠르고 문장의 세련미가 돋보인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두의 이 송고(頌古 〓 頌)를 공안시의 백미라고 일컬어 왔던 것이다.

         물론 설두 이전에도 시가詩歌의 형식을 빌어 선의 진수를 드러낸 「신심명信心銘」, 「증도가證道歌」와 같은 작품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설두처럼 자신의 깨달음을 이토록 직관적인 예지와 영감에 찬 언어로 읊어낸 예는 일찍이 없었다.

         설두는 벽암록의 이 100칙 송고에서 절구絶句, 율시律詩, 고시체古詩體 등 한문의 다양한 시체詩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는 설두의 송고를 일러 한림지재翰林之才가 있다고 극찬했던 것이다. 설두는 이 송고의 시적인 표현을 통해서 선의 근본정신을 다시 한 번 되살려내려 했는데 설두 이후 ‘설두송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승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임제의 후예들(임제계통의 선승들)은 설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눈부시게 발전했다. 즉 임제의 역동적인 기상과 설두의 문학적인 세련미가 결합하여 그 정점에 이른 것이 바로 원오의 이 『벽암록』이다.

     

        ⑥ 송의 착어著語 : 설두의 공안시 한 대목 한 대목 밑에 붙인 원오의 촌평이다. 본칙의 착어에 비해서 그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데 그것은 본칙이 아니라 그 본칙의 경지를 읊은 송頌의 착어이기 때문이다. 이 송의 착어에는 대체로 본칙의 착어가 갖는 특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착어에는 때로 같은 말의 중복이 많다. 그것은 원오가 세 번의 『벽암록』 강의에서 세 번에 걸쳐 착어를 내린 것을 제자들이 그때 그때마다 기록했거나 기억했던 것들을 그대로 필기해서 책으로 편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장의 중복이 있게 된 것이다.

     

       ⑦ 송의 평창評唱 : 설두의 송고에 대한 원오의 평창이다. 기본골격은 본칙평창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본칙 100개는 여러 사람의 필체로 쓰여진 데 비해서 이 <송>은 설두 한 사람의 작품이기 때문에 평창에서의 설명도 여기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송>의 평창은 본칙평창에 비해서 대체로 짧은 경우가 많다. 문장의 참신함이 다소 떨어지고 긴장감이 풀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동시에 본칙과 송의 차이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