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철 국악인들 佛樂도량-

초등생부터 칠순보살까지
해마다 2백여명 ‘산 공부’
신명나는 민요가락 울리고
북장단·가야금소리 ‘가득’
불교음악 발전 열띤 토론도

우당탕 퉁탕 계곡물 하염없는 피아골.


피아골의 중간 지점에서 우측으로 가파른 포장길을 타고 오르는 하악대(下岳臺)에 불자 국악인들의 산공부 도량 불락사(佛樂寺)가 있다. 절 이름이 불교음악을 이루는 도량이란 뜻이어선가. 부처님 모신 큰법당의 이름마저 법고전(法鼓殿)이다. 시방세계에 둥둥둥 법고를 울려 중생의 무명번뇌를 씻어 주려는 발원이 역력한 이름이겠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2백여명의 국악인들이 불락(佛樂) 도량으로 산공부를 하러 온다. 국악고등학교 학생에서 원로들까지 이 도량으로 악기를 들고 찾아들어 열흘이고 보름이고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지리산의 정기를 가슴 가득 받아들여 기량을 다진다.

 

“물건너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한패가 떠났고 오늘 오후에는 경기민요 하는 분들이 오십니다.”
지리산 만큼이나 넉넉한 웃음을 가진 사무장 보살이 가리키는 대로 물소리 요란한 개울 건너 산공부를 위해 따로 지어진 두채의 조립식 건물을 향했다.

두평 남짓의 방 열개로 이뤄진 아랫채에서는 소리꾼 말고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가야금과 해금 주자들이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임기자가 웬일로 이곳에….”
방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젊은 소리꾼 최진숙씨의 ‘보렴’ 가락에 북장단을 메기다 말고 놀란 인사말을 보내는 이는 작곡가 김회경씨다. 채마밭 좁은 길을 따라 오른 윗채는 조용했다. 반쯤 열린 문 안에서는 박범훈교수(중앙대)가 온 몸이 빠져들도록 오선보를 들여다 보며 작곡에 몰두해 있었다. 박교수는 벌써 보름전부터 불락 도량에서 작업중이다. 논문을 쓰다가 한숨 쉬고 나면 작곡을 하고 ‘콩나물’을 그리다가 악상이 막히면 다시 논문을 쓰는 하루하루로 여름을 잊고 있었다.
“8월 14일 국립극장에서 공연될 건국50주년 기념 창극 ‘김구’를 작곡하고 있어요.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불교음악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지요. 한국의 불교음악 부분은 불교전래 이후 현대의 창작 찬불가까지 총체적인 역사를 정리할 계획입니다.”

커다란 책상하나에 신디사이저 한대가 전부인 이 방안에서 박교수는 ‘보현행원
송’ ‘부모은중송’ ‘이차돈의 하늘’ 등 대작을 낳았다.
불락사 도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산뜻하게 조성된 3층석탑이다.
작년에 타계한 경기민요의 대가 안비취 여사가 국악과 불교음악의 창창한 발전을
염원하며 세운 탑이다. 탑 옆에는 안여사의 기념비가 섰는데 ‘아 비취하늘 고와
라‘를 제목으로 한 비문은 동국대 목정배교수가 지어 그 독특한 필체로 새겼다.
기념비에는 안여사의 유골이 안치됐다.

오후에는 박교수와 문하생들이 올 해 처음으로 산사 여름수련회를 개최한 쌍계사
를 찾았다.

우리나라에 범패를 처음 들여 온 진감국사의 체취가 서린 곳이자 차의
본고장인 쌍계사답게 ‘선(禪) 차(茶) 악(樂)’을 주제로 3박4일씩 두 차례 진행하
는 수련회에 불락사에 공부하러 온 국악인이 강연과 연주를 하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정진중인 60명의 수련생들은 유창하게 강연하는 박교수의 코끝에서 잠시
도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의 음악과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고달픈 민족의 역
사를 지탱해 온 큰 힘이었고 앞으로도 그 힘은 더욱 대간을 키워 갈 것임을 장중
한 관현악을 지휘하듯 강연을 하는데 어느새 80분이 흘렀다. 강연에 이어 최진숙
씨가 판소리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풀어 내는 동안에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도 낙숫물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잠시의 외출에서 돌아 온 불락사에는 방금 경기민요 전수생 15명이 도착해 있었
다. 중요무형문화재 57호인 12잡가를 안비취 여사로부터 사사 받은 최용숙씨와 중
요무형문화재 제19호인 선소리 산타령 이수자 백영춘 선생이 예인국악연구소 전수
자들과 열흘간의 일정을 잡고 산사를 찾은 것이다. 안비취여사의 기념탑에 인사를
드리고 짐정리가 끝나자 곧바로 산공부가 시작됐다.

법당 아래서 ‘회심곡’ 한 대목으로 목을 풀고는 시조도 토해 내고 경서도창의
대목들을 백영춘 선생의 장고 장단에 맞춰 화창하며 군데군데 잘 안되는 곳은 몇
번이고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이다. 빗소리를 타고 어둠이 내리는 줄도 모른 채 경
기 12잡가 산타령 대목들을 토해내는 열정적인 연습에는 초등학생과 여고생에서
칠순을 바라다 보는 노보살이 함께 어루러져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지스님 방으로 모여 들었다. 박교수와 문하의 국립국악관현
악단 단원, 작곡가 김회경씨 등이 스님이 달여 내는 지리산 야생 우전차 향기에
묻혔다. 이야기의 주제는 놀라운 것이었다. 법인을 설립해 장기적인 계획 아래 책
임있는 불교음악 발전을 위한 사업들을 전개 한다는 것이 그들의 숙원이었다. 법
인을 통해 추스려 나갈 일들도 어느새 조목조목 챙겨 둔 것으로 봐서 올 가을이나
내년 봄쯤에는 불교음악 전문 법인이 하나 생겨 날 것 같았다.

한동안의 난상 토론이 이어지는데 상훈스님이 갑자기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어릴적 아버지께 배운 뒤로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악기도 낡았지만 한 가락 켜
보고 싶네요.”

차향기에 취했는가.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국악인들인데 어쩐 일로 바이올린이 등
장 했는가. 파격이 아닐 수 없었고 그 파격은 아름다웠다. 원래 그들은 국악을 하
되 서양음악을 배척하지 않고 서양음악을 받아 들이되 우리맛을 가미하는 대승적
가슴으로 예술의 길을 넓혀 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차향기를 배경으로 듣는 바이올
린 ‘성불사’ 한 곡의 맛은 일품이었다.

새날은 비가 개었다. 개울 건너 두채의 집에서는 다시 창작과 연습의 일상이 이어
졌다. 작곡가는 오선보에, 연주자는 악기에 온 몸을 맡기고 벌이는 한바탕의 싸움
이 다시 시작됐다. 물론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자신이다.
민요 전수자들은 절 뒷길을 올라 폭포 아래에 자리를 잡고 향기로운 산공기를 단
전까지 밀어 넣으며 한가락 한가락 연습에 몰두했다. 폭포소리에 노랫소리가 묻혔
는가, 노랫소리에 폭포소리가 묻혔는가. 손장단을 맞춰가며 한 대목씩 이어지는 노
랫소리도 기운차게 내리 쏟아지는 폭포소리도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인터뷰/불락사 주지 상훈스님


-“불교음악은 민족가락 뿌리”-

어릴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상훈스님은 불자국악인들에게 공부도량으로 절을 제
공할 뿐 아니라 국악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한달에 한차례 이상씩
서울과 부산 광주 등지에서 국악과 불교음악에 대한 강연도 한다. 91년 처음으로
창작된 불교 교성곡 ‘붓다’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 스님은 진감국사가 범
패를 가르치던 쌍계사 국사암 주지를 하며 불교 음악 근본도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창건한 사찰이 불락사다.

“불락사는 불교음악 발전을 위한 큰 염원을 가진 음악인들의 도량입니다. 음악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것, 다시말해 음악포교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불교음악 근본도량의 설립도 중요한 불사란 생각에서 창건된 것입니다. 음
악인들의 산공부를 위해 절문을 열어 두고 있는데 여기서 대작이 작곡 되기도 하
고 연주자들의 기량이 다져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래 불교 음악의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스님은 불락사 소유의 땅 3천평을 불교음악 교육연수원 부지로 내 놓았다. 박범훈
교수와 문하생들이 법인을 설립하면 곧바로 연수원 건립 불사가 시작될 계획이다.
연수원에는 연습실과 공연장 세미나실과 법당등 기예와 신행을 함께 다지는 공간
도 함께 마련 할 계획이다.

“불자 음악인들이 산공부를 할 좋은 장소가 없는한 불교음악의 발전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조선말기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사당패 문화가 형성됐었고 ‘영산회상
곡’ 등 아악들에 불교적 요소가 짙게 베어 있는 점은 불교야말로 우리 민족음악
의 중요한 줄기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 속에서도 전법과 불교문화의
창달을 위해서는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음악이 발전돼야 합니다.”

임연태 기자(ytlim@buddhapia.com)